인간은 언제나 물을 임의적으로 최적화하여 배분해 왔고, 그 권력의 주체는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 분배 시스템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와 관련한 새로운 신체로써 데이터 센터를 바라보자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은 누구를 위해 최적화되고 있으며, 그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걸까요?

1. 고대 - 치수와 권력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인 ‘治’를 보면 앞에 물 수 변( 氵)이 붙어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물을 다스리는 것은 곧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치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사회학자 칼 비트포겔(Karl Wittfogel)은 『동양적 전제주의』(1957)에서, 대규모 관개와 치수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는 이를 조직하기 위한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필연적으로 발달하며, 물을 통제하는 소수가 곧 총체적 권력을 쥐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리 시설을 잘하여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음. 또는 그런 일.

물장수 이미지

치수를 위한 인류의 기술은 오래전부터 구체적인 물건으로 존재했습니다.
도시 상수도 시스템은 청동기 시대(기원전 약 3200~11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그리스의 물 관리를 기록한 크라우치(Crouch)는 압력 파이프를 포함한 최초의 상수도 공급 시스템이 이미 기원전 2천년경에 존재했음을 증거합니다. 고대 미노아 문명과 그리스 문명은 도시 상수도망, 하수도 및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우물, 저수조, 탱크, 저수지, 댐, 수로, 그리고 테라코타(점토)와 납으로 만든 수도관이 사용되었습니다.

충분한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대규모 펌프식 상수도 시스템은 16세기 후반 런던의 상수도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템즈강에서 물을 끌어왔으며, 1582년에 런던 브리지 아래에 펌프가 설치되었습니다.
가장 웅장한 펌프 설비는 1682년에 건설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센 강에 설치된 것이었습니다. 펌프들은 3단계로 배치되어 물을 차례로 3개의 저수지로 끌어올렸는데, 그중 가장 높은 저수지는 센 강보다 533피트(162m) 높이에,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펌프는 나무로 만든 물레방아로 구동되었으나, 이후 64마력의 증기 엔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오늘날 왕복 펌프라고 불리는 힘 펌프는 두 개의 피스톤 펌프로 구성되며 토출관이 공기실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크테시비오스(기원전 285–222년경)의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트루비우스는 이 펌프를 '물을 매우 높은 곳까지 뿜어내는 크테시비우스의 기계'라고 언급했으며, 이는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거나 화재 진압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고대의 치수는 두 의미를 가졌습니다. 홍수와 가뭄이라는 물리적 위협을 다스리는 기술이자, 동시에 그 기술을 쥔 자가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의 장치였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몸과, 물에 의해 다스려지는 몸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카드 이미지 1

https://www.aquincum.hu/en/blog/ktesibios//p>

2. 근대 - 물 흐름의 은폐

19-20세기 근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물 분배 시스템은 거대한 철제 관과 지하 파이프라인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지만, 그 물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상하수도 처리 과정) 체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회학자 수전 레이 스타(Susan Leigh Star)는 「인프라의 민족지」(1999)에서, 인프라란 언제나 관계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단은 누군가에게는 매끄럽고 투명하며 잘 기능하는 인프라이지만, 휠체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장벽이 됩니다. 그리고 인프라의 비가시성은 오직 그것이 고장 났을 때에만 걷힙니다.

데이터 센터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각종 인터페이스를 통해 데이터를 만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데이터 센터의 존재와 그 안에서 소모되는 물리적 자원(물과 전기)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 비가시성 역시 관계적입니다 — 도시의 사용자에게는 그저 '클라우드'일 뿐이지만, 데이터 센터 인근에서 가뭄을 겪는 주민에게는 이미 감지되고 있는, 매우 물질적인 압박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이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은 대개 위기의 순간입니다 — 정전이 나거나, 가뭄으로 물 공급이 끊기거나, 냉각에 실패해 서버가 멈출 때. 우리는 이 '고장'과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은폐된 인프라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유일한 균열이라고 보고, 그 균열을 감각적으로 붙잡아 보려 합니다.

동시대 물의 형태 또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프라는 시각적으로 은폐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프라의 비가시성'이라 부릅니다. 이 비가시성이 지속되는 한, 물을 내어준 몸의 탈수는 물을 받은 몸의 눈에 결코 도달하지 않습니다.

카드 이미지 2

https://www.rmg.co.uk/collections/objects/rmgc-object-151965

3. 물들에서 물로 - 동시대의 최적화와 추상화

근대 수자원 관리는 20세기 중반 이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댐 건설, 수력 발전, 유량의 디지털 계측)으로 최적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을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로 볼 것인가, 효율적으로 분배되어야 할 시장 상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데이터 센터가 맞닥뜨린 수자원 갈등의 본질입니다. 빅테크 기업은 AI와 클라우드 서비스의 효율을 위해 지역의 물을 우선 배분받기를 원하지만, 이는 지역 주민의 공공 수자원을 사유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과연 데이터 최적화가 인간의 생존적 물 권리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여기서 도출됩니다.

이 최적화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물이 최적화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해야 했습니다. 지리학자 제이미 린튼(Jamie Linton)은 『물이란 무엇인가: 근대적 추상의 역사』(2010)에서, 물이 환경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벗겨져 나가 순수한 화학적 추상, 즉 단일한 H2O로 환원되어 온 역사를 추적합니다. 그는 이 추상화된 개념이야말로 근대 사회가 물을 거리낌 없이 막고, 돌리고, 관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은 언젠가부터 복수형의 '물들'(waters)이 아닌, 교환 가능하고 정량화될 수 있고 관리 가능한 단일한 물질이 되었습니다.

이 추상화의 논리는 낯설지 않습니다. 데이터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쳐 왔습니다. 인간의 기억과 경험, 문화적 생산물이 인공지능에게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있는 맥락에서 벗겨져 나가 벡터와 토큰이라는 단일한 형식으로 환원되어야 했습니다. '물들'이 'H2O'가 되는 과정과, 인류의 아카이브가 '데이터'가 되는 과정은 같은 구조를 공유합니다 — 둘 다 관리 가능해지기 위해, 먼저 무언가로 환원되어야 했습니다. '물들'이 'H2O'로 환원되는 순간, 물은 어디서든 옮겨질 수 있는 것이 되고 — 그 이동은 언제나 한쪽의 습윤과 다른 쪽의 탈수라는 짝을 이루며 일어납니다.

결국 물은 정량화될 수 없으며, 완전히 관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수의 물을 다시 소환해보고자 합니다.